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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중심에서

최근 국내 IT 업계에 연일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시작된 경기 침체에 유독 IT 업계의 타격이 크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높은 기대수익 때문에 거품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산업이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나는 버블의 수혜자다.
비전공자임에도 업계 전체가 호황이었기 때문에 부족한 실력에도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잘 살려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IT 기업들이 유동성 잔치를 벌이던 바로 그 폭풍의 중심에 있었다.
폭풍의 중심은 매우 고요하다.
그 안에서는 외부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폭풍은 단단한 구름벽으로 둘러 쌓여있는데 계속 주변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더 강해진다.
그리고 매우 빠르게 일대를 휩쓸고 다닌다.
주변에는 시류에 편승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다 열심히 일 하면 큰 보상이 뒤따를 것이라는 달콤한 꿈을 꾸게 된다.
다만 계속 꿈을 좇을 수 있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영원할 것이라는 다소 안일한 믿음이 문제였다.
누군가를 탓할 수는 없다.
여러가지 사회적 이유로 인해 꽤 오랜 시간 막대한 현금이 시장에 쏟아졌다.
마침 그 때 돈이 흘러가던 길목에 내가, 아니 우리가 있었고 거대한 자본의 흐름에 휩쓸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에 대해 완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가 몸 담았던 곳이 잘 안 되었다면 그것이 결국 나의 발자취기 때문이다.
분명 더 잘 할 수 있었던 부분도 있었고 반대로 개인이 바꾸기 힘든 거대한 압력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개인으로서 할 수 있었던 소심한 반항은 회사를 떠나는 일이었다.
길지 않은 커리어 내에 이직이 잦은 편이다.
당연히 자랑은 아니지만 부끄럽지도 않다.
모든 선택마다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업 문화가 맞지 않아서 회사를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결국엔 비지니스 모델에 공감하지 못해서 회사를 떠난 것이었다.
비지니스 모델은 조직의 심장과 같다.
심장은 온몸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이산화탄소와 같은 노폐물을 제거한다.
그리고 심장이 멈추면 죽는다. 비지니스 모델도 마찬가지다.
조직 안의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은 비지니스 모델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런 의사결정 기준은 성과 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비지니스 모델은 구성원의 특정 행동을 강화하거나 약화하는 식으로 조직의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문화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비지니스 모델이다.
비지니스 모델이 어떤 지에 따라 기업들의 각양각색의 문화를 갖는다.
지금까지 떠나온 회사들의 비지니스 모델은 나의 가치관과 달랐다.
개인적으로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다. 만들어본 적도 없다.
보유한 현금 내에서 소비하고 투자하는 것을 선호한다.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빚을 지는 것을 싫어한다.
경제학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좋아하는 말이 “공짜 점심은 없다”이다.
그렇다고 안전추구형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충분히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도 한다.
다만 감당할 수 없는 금리의 대출을 받아가며 투자하는 성향이 아니다.
(어쩌면 아주 큰 돈을 만질 깜냥은 안 되는가 보다.)
또 아마존의 여러 리더십 원칙 중 두 가지를 특히 좋아한다.
첫번째는 너무나도 유명한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이고, 두번째는 (아마 처음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바로 검소(Frugality)다.
“Accomplish more with less.”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엔지니어링의 정수를 한 마디로 정리하는 문장이다.
그리고 아직도 60년째 같은 집에 살며 아침으로 3달러짜리 맥모닝을 먹는 워렌 버핏을 존경한다.
장기적인 성공은 반드시 절약과 검소함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검소함은 습관이다. 잘못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인생은 매우 긴 게임인데 특히 검소함은 힘든 시기에 빛을 발한다.
만약 누군가 자신에게 잘 맞는 조직은 어떤 곳일까 묻는다면 비지니스 모델을 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비지니스 모델에 맞게 회사는 생각하고 움직인다. (끝)